아나콘다가 감겨있는 샹들리에
텍스트 에반 오스노스(뉴요커 기자/퓰리처상 2008 수상자)
First published in Red Ink, Korean edition, FOTASIA publishers, October 2019

2017년 7월 어느 오후, 북한의 외교관이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전해왔다. 좋은 소식은 뉴요커 잡지사가 신청한 북한 방문이 평양에서 승인되었다는 것 이었다. 사진작가 맥스 핀커스(Max Pinckers), 그의 조수 빅토리아 곤살레스 피게라스(Victoria Gonzalez-Figueras) 그리고 나는 북한을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나쁜 소식은 북한과 미국이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었다. 양국 간의 긴장이 나날이 고조되고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가 본 적 없는 화염과 분노”로 북한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했다. 이에 북한 정부는 미국 영토로 4개의 미사일을 발사할 준비가 되었다고 응수했다.

나는 미국 국가안보국에서 수년간 일한 정보원에게 연락해서 우리가 방문하는 것이 안전한지 물었다. 당시 북한에는 미국인 3명이 억류되어 있었다. 정보원 은 질문을 듣고 고민하더니 마침내 “아마도 괜찮을 거예요. 그들이 당신을 협 상카드로 쓸 여지는 주지 마세요.”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의미하 는 것은 무엇인가? 북한에서의 규율은 무엇인가? 법은 언제 개정되며, 만약에 개정된다면 우리가 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을 알 수는 있는 것인가? 비극적인 전례로, 미국인 학생 오토 웜비어(Otto Warmbier)는 평양의 한 호텔에서 정 치선전 포스터를 훔치려 한 혐의로 체포되었고, ‘반국가행위죄’ 혐의에 대 해 유죄를 선고받았다. 2017년 6월, 미국 당국 관계자는 웜비어가 혼수상태에 빠진 것을 확인하고 그의 석방을 요청했다. 그는 미국으로 귀환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사망했다.

하지만 양국 간의 고조되는 갈등은 덮어둬야 했다. 북한에 도착하기도 전에 우 리는 북한 방문에 대한 불분명한 규율을 처음으로 마주쳤다. 베이징에서 조선 민주주의인민공화국 입국을 위한 비자를 발급받고, 맥스, 빅토리아 그리고 나 는 평양으로 가는 항공편을 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중국에서 비행기 탑승 전 마지막 보안검사에서 사진 촬영 장비를 검사하던 한 요원이 배터리팩을 압 수하면서 “리튬 배터리 금지” 표지를 손으로 가리켰다. 맥스와 빅토리아는 경악했다. 플래시를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알파벳 중 반만 가지고 글을 쓰라 는 것과 같다. 우리는 요원에게 애원했고 이내 분노했다. 심지어 뇌물을 주는 것도 고려했다(결국 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무것도 통하지 않았다. 마지막 탑승 안내가 나올 때, 우리는 배터리를 포기하고 허둥지둥 탑승했다.

메인 플래시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 탓에, 기내에서 맥스와 빅토리아는 기발한 대안을 만들어냈다. 작은 플래시들을 연결하고 이어 붙여 메인 플래시를 대신 한 것이다. 그것은 카메라에서 솟아나는 거대한 뿔처럼 보였지만 메인 플래시 대용으로 충분했다. 맥스와 빅토리아가 플래시를 제작하는 동안, 나는 내 노트 북에서 자료와 기사들을 삭제했다(북한은 북한 정치와 지도부에 관한 외부 자 료를 철저히 금지한다. 검증된 역사만 허가된다. 나는 이에 대해 수색이 있을 거라고 사전에 주의를 받았다). 우리는 평양에 도착했고 녹색 군복 같은 유니 폼을 입은 세관 요원들이 우리 가방에 밀수품이 없는 지 수색했다. 우리가 예 상했던 바였다. 그런데 그들이 내 가방을 열었을 때,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 았다. 옷가지 위에 내가 깜빡 잊고 빼지 않은 북한 관련 책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날 아침 통화를 하면서 짐을 싸다가 생각 없이 가방에 책들을 넣었 던 것이다.

요원들은 나를 작은 방으로 데려가 심문하기 시작했다. 그 책들을 어디서 얻었 는가? 그 서점의 주소는 어디인가? 그 책들을 읽었는가? 몇 차례의 질의응답 후에 그들은 내 책을 압수했고 다시는 북한에 책을 가지고 오지 않는 데에 동의 했다(기꺼이 하고 싶었던 서약이다). 그들은 서류를 처리했고 나는 풀려날 수 있었다. 나는 방에서 시무룩하게 걸어 나가, 열린 문틈으로 사건을 지켜보고 있 었던 맥스와 빅토리아를 만났다. 북한에 대한 우리의 첫인상은 긴장감으로 가 득했다. 나는 내 부주의를 탓할 수밖에 없었다. 공항에서 우리는 박성일씨를 만 났다. 그는 외무부 관계자로 우리의 가이드이자 경호원이었다. 그는 자기의 왼 쪽 가슴에 북한을 건국한 김일성의 사진을 달고 있었다. 박성일씨는 침착했고 능숙했다. 그는 외국인들의 질문에 우회적 답변이더라도 친절하게 대답해주었 다. 내가 그에게 앞으로 며칠간의 우리 일정에 관해서 물었을 때, 그는 유쾌하 게 “호텔에 도착하면 다 알려드릴게요!”라고 답했다.

차량으로 약 30분을 이동한 뒤 평양 외곽의 3층짜리 호텔, 고방산 게스트 하 우스에 도착했다. 호텔은 일반 북한 시민들과 마주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주 로 서양의 방문객들에게 배정되는 것 같았다. 우리는 호텔의 유일한 투숙객이 었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다. UN에 따르면 북한 국민 의 72%는 정부 식량 배급에 의존하여 살아간다. 하지만 그 호텔은 전시용 견 본품이었다. 모든 대리석과 화강암은 광택이 나게 닦여 있었고, 보는 이의 시 선을 의식하듯 장식적으로 꾸며져 있었다. 거의 모든 객실에 샹들리에가 있었 다. 로비에는 거의 미니밴만한 샹들리에가 달려있었다. 미적 양식은 북한을 서 구의 제재나 고립에 개의치 않는 모습으로 묘사하고자 했다. 그것은 관대함과 활기참을 억지스럽게 가장한 연극 같았다.

우리는 군에서 복무했던 외무부 관계자인 리용필씨 그리고 박성일씨와 저녁식 사를 했다. 리용필씨는 강단이 있고 기민했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는 대동 강 맥주를 들어 올리며 우리의 도착에 축배를 들었다. 종업원들이 일사불란하 게 식사를 차례대로 내어왔다. 은행국, 오골계, 김치, 민물 생선, 바닐라 아이스 크림이 나왔고, 맥주, 레드 와인 그리고 소주가 곁들여졌다. 우리는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엇보다도 리용필 씨는 북한이 서양과의 대립에서 전 혀 위축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우리가 수용하기를 바랐다. 그는 “우리 조국은 인구와 영토에 있어서는 작지만, 위엄에 있어서만큼은 세계 최고입니다. 우리 는 존엄과 자주권을 목숨 걸고 지킬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저녁 식사 후, 맥스와 빅토리아는 아래층에서 외무부 관계자들과 당구 게임(포 켓볼)을 하게 됐다. 맥스는 완전히 앞서고 있었고 존엄에 대해 열성적으로 역 설하는 관계자들이 북한 땅에서 벨기에(맥스의 국적)가 승리하는 것에 대해 어 떻게 반응할지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맥스가 공을 모두 다 집어넣고 8번 공을 넣어야 하는 마지막 샷만을 남겨두고 있을 때, 그는 지시구와 8번 공을 함께 넣 어 몰수 패를 당했다. 다행이었다.

우리 호텔방은 넓고 허했고 설비가 복잡했다. 북한에서는 그 어떠한 것도 자유 로운 것이 없었다. 방문자와의 모든 접촉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더라도 통제되 었으며 조정되었다. 작은 세부사항들의 전체주의였다. 커피 테이블에는 김정 은이 영웅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잡지들이 놓여있었다. 화장실은 질서와 청 결 그 자체였다. 비누와 칫솔에는 작은 글씨로 “비누”와 “칫솔”이라고 표 기되어 있었다. 경험의 모든 부분이 계획된 것이었다. 마치 영화감독 웨스 앤 더슨(Wes Anderson)이 치밀하게 계산한 무대 세트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열성적인 영화광이었던 김정일이 무수한 할리우드 영화를 수집하고, 고질라와 고전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이 떠올랐다.

그로부터 며칠간 우리는 해가 뜰 때부터 밖으로 나가 최대한 많이 방문하고 인 터뷰를 진행했다. 길고 바쁜 날들이었다. 저녁 늦게 호텔에 돌아와서는 언제 감 시당하고 있는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한 번은 맥스와 빅토리아가 그들 의 방에서 화장실에 작은 고장이 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욕조 가장자 리에 실리콘 마감이 빠진 부분에서 물이 새고 있었다. 그 날 저녁 우리가 방으 로 돌아왔을 때, 그 틈이 수리되어 있었다. 우연이었을까? 누가 알 수 있을까?

모호함은 불확실성을 더할 뿐이었다. 우리는 워싱턴의 내 정보원이 말했던 경 고를 명심했다. 우리는 모든 의사소통을 북한의 관계자들이 듣거나 읽을 수 있 는 것처럼 했다. 평양에서 아내에게 메일을 보낼 때도 우리의 안전에 대한 최 소한의 내용만 적었다. 내가 너무 무미건조하고 간결하게 메일을 보낸 탓에 그 녀는 메일에 암호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20년간의 기자 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임무는 처음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조금 도 위험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총을 쏘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우리를 위협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곳에 대해서 절대 안심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오후, 우리는 새로 건설된 려명 거리를 거닐었다. 북한 정부는 우리가 신축 건 물들과 선별된 상점들을 보기를 바랐다. 그때, 맥스가 사진 구도를 더 잘 잡기 위해 무릎 정도 오는 바위에 올라갔다. 경호원들은 갑자기 당황하며 그에게 바 위에서 내려오라고 지시했다. 별다른 설명은 없었지만, 바위에 올라간 것이 용 납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 순간은 감춰진 안보의 하부구조의 단면을 보 여주었다. 안보란 북한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는 불문율과 행동지침이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순간이 우리를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통제와 편집증 속에서도, 인간미를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 있었다. 이 순간들 은 북한이 외부세계와 의미 있는 관계를 맺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일부 일정들은 평양이 번영하고 있으며 외부 압력에 휘둘리 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그 일정의 일부로 능라도 돌 고래 수족관에 공연을 관람하러 갔다. 돌고래 쇼에서 돌고래들은 몸을 뒤집고, 점프를 하고 묘기를 부렸다. 여기서 맥스는 무대로 불려 나가 훌라후프를 받아 들었다. 맥스 옆에 선 북한 여성도 훌라후프를 돌렸다. 일종의 시합이었다. 맥 스가 훌라후프를 돌릴수록, 관중은 더 환호했다. 환호 속에는 즐거움, 어색함 과 외국인에 대한 순수한 신기함이 섞여있었다. 북한 사람들이 외부세계에 대 해 그리고 우리가 그들에 대해 얼마나 조금밖에 볼 수 없는가에 놀라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점심과 저녁을 먹으면서 우리는 경호원들에게 가족, 배경, 두려운 것, 원하는 것 등에 대해서 캐물었다. 그들은 교묘히 빠져나갔지만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 다. 우리 양측은 서로를 이해하려고 했지만 깊이 신뢰하지는 않았다. 어떤 실 언이 우리를 곤경에 빠뜨릴지 또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대립을 촉발할지 예 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안개 속에서, 우리는 화기애애했지만 자기 방어적이 었다.

평양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는 우리는 조심해야 했다. 북한에 도착하자마 자 여권을 제출했고, 이전에 외국인이 평양에서 체포되었던 대부분의 경우, 외 국인 방문자가 공항에서 출국하려는 마지막 순간에 억류되었기 때문이다. 최 후의 순간이 되어서야 불문율을 어겼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습은 일 종의 편집증을 만들어낸다. 어쩌면 공포감의 조성 자체가 관습의 목적일지 모 른다. 언어학자이자 중국 전문가 페리 링크(Perry Link)는 권위주의 하의 삶 에서의 지속적인 불안을 “아나콘다가 감겨있는 샹들리에” 밑에서 사는 것에 비유했다. 샹들리에 밑에서 사람들은 언제 뱀이 공격할지 알지 못한 채로 적응 하고, 걱정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북한에서의 경험은 감각적이고, 표면적이며, 단편적이었다. 정신이 만들어낸 극장 같았다. 우리의 방문은 “아나콘다가 감겨있는 샹들리에” 밑에서 늘 불 안에 떠는 북한 사람들의 삶을 힐끗 들여다본 수준에 그쳤다. 언젠가는 북한 사 람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본다.